요즘 내가 음악을 접하는 경로는 멜론같은 음악 앱 보다는 유튜브의 뮤직비디오 또는 음원 영상인거 같다. 아무래도 내 라이프스타일에서는 음악 앱 보다 유튜브 앱을 먼저 실행하기 때문일 거다. 그러다가 작년 우연히 알게 된 음악 유튜브 채널 essential;(에센셜). 매번 내가 원하던 취향의 음악 선곡 센스에 놀라면서 어느새 나의 최애 온라인 뮤직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 집콕 시대, 쇼핑몰 음악이 너무 그립더라
2020년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자연히 외출하는 빈도가 잦아들게 되고 그만큼 귀를 스치며 들리던 다양한 음악들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집에서 내가 좋아 선곡한 음악만 듣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쇼핑하며 듣던 새롭고 다양한 사운드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하게 된 패션 매장 음악 플레이리스트. 그렇게 처음 essential;을 접하게 되었다.
뭐지? 한적한 평일 오후 여의도 IFC에서 ZARA와 H&M을 쇼핑하며 거닐던 그때의 기분이 딱 느껴졌다, 진심으로. 심지어 그때 그 매장의 향기까지도 전해지는 듯했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이어지는 (대부분 잘 모르는) 팝송들이지만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사운드의 향연. 딱 내가 찾던 그 느낌, 원하던 취향이었다.
이렇게 고마운 유튜버가 있다니, 다른 영상도 당장 (들어)봐야겠어! 기대와 호기심으로 essential; 채널을 찾아가 입장했는데.. 곧바로 선택 장애가 왔다. 이미 수십 개의 영상이 올려져 있었는데 어찌 이리도 다 감각적인 것인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제목과 썸네일들이 내 선택을 어지럽게 했다. 왜냐하면... 다 너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에! 어쩜 내가 원하는 음악적 취향을 다 알고 전시해 놓았을꼬?
| essential; 넌 누구냐?
대체 누굴까, 이 사람, 이 유튜버는? 심지어 이런 음악 유튜브는 대부분 수익이 음원 아티스트에게 배분되기 때문에 수익화도 잘 안될 텐데.. 재능 기부 유튜버네. 부디 지치지 않고 계속 만들어 줘야 할 텐데... 라며 가볍게 넘어가기에는 음악 선곡부터 타이틀 작명, 썸네일 이미지까지 너무 매력적이었다(존나 힙하잖아!!) 너무 궁금해서 네이버에 essential;을 서칭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된 놀라운 사실, essential; 유튜브는 국내 벅스뮤직에서 직접 운영하는 채널이었던 것이다.
벅스뮤직에서 ‘뮤직PD’로 선정된 벅스의 회원이 주제를 정해서 음악을 선곡,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벅스에서 ‘뮤직PD 앨범’으로 명칭해 서비스하는데 유튜브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영상으로 제작해 서비스하는 채널이 바로 essential; 이다. 이런 뮤직PD처럼 개인이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 공유하는 서비스는 벅스뿐 아니라 멜론 등 대부분의 음원사이트에서 비슷하게 시행하고 있지만, 벅스의 뮤직PD 제도는 타사와 달리 선정부터 업데이트까지 벅스 내부의 심사를 거쳐 진행되기 때문에 그 퀄리티가 유지되고 있다고. 뮤직PD의 실적(뮤직PD 앨범 발매 수, 스트리밍 건수)에 따라 포인트와 이용권 등의 혜택도 지원하고 있다.
essential;이 벅스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란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데, 이제까지 나만 몰랐던 거야? 보니까 essential;에서 최근 업데이트되고 있는 영상 말미에는 벅스뮤직 로고도 박히기 시작했다.
| essential; 왜 끌리나?
그럼 유료 음악 사이트인 벅스는 왜 굳이 무료로 음악을 들려주는 유튜브 음악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을까? 정확한 목적은 (담당자를 만나기 전엔)알 수 없지만 현재 essential;의 시청자 또는 구독자 반응을 보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아, 멜론과 헤어져야 하나
멜론이랑 헤어졌는데 책임지세요
기어이 벅스뮤직 가입하고 말았어요"
나 또한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벅스란 음악 서비스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essential;을 통해서 “오~ 벅스가 음악을 쫌 아네?” 라는 음악적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즉 기존의 음악 서비스를 떠나 벅스뮤직으로 새롭게 유입시키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딴길로 새는 경우,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 그럼 essential;이 이렇게 리스너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비결이 과연 뭘까?
POINT 1. 취향의 시대, 첫인상부터 취향 저격
essential;의 매력이라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음악을 먼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감성 충만한 제목과 마치 잡지 표지나 광고의 한 장면 같은 감각적인 썸네일. 그리고 첫 곡부터 이를 증명시켜주는 취향 저격 선곡이다. essential;의 영상을 즐긴다는 건 마치 Essential;에서 시청각적으로 디자인해 놓은 쇼룸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방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골라 들어가면 된다.
POINT 2. 취향의 시대, 이 시대 음악을 듣는 습관을 담다
지금은 콘텐츠 풍년의 시대다. 수백 개의 TV 채널과 유튜브, 넷플릭스 등 우리의 시간을 사로잡으려는 콘텐츠들이 전 세계에서 1초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즐길 거리 홍수 속에서 음악 콘텐츠를 한곡 한곡 집중해서 듣는다는 건 뮤지션이 아닌 이상 고리타분하다거나 사치에 가깝다. 즉 이 시대의 음악은 내 일상을 해치면서까지 집중해서 듣는 음악이 아닌,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BGM에 가깝다. 그래서 음악을 들을 거라면 매곡마다 선택해야 하는 개입 없이, 알아서 잘 흘러나오는 음악이 필요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취향'이다.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와 줘야 하는 것. essential;은 테마를 다양한 취향으로 구분해 서비스하고 있다. 내 취향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고르거나, 내가 닮기 원하는 취향(또는 분위기)을 essential;이 만들어 주기도 한다.
POINT 3. 취향의 시대, 이 시대 창작과 소비되는 음악 트렌드를 담다
2010년대 초반부터 각 음원사이트의 주된 운영 이슈는 ‘음악 추천’이었다. 내가 일했던 음원 플랫폼에서도 사용자가 감상한 음원 ‘장르’를 기반으로 한 음악 추천 서비스를 위해 기반 DB작업(장르 분류작업)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그 장르의 기준이 현재로 올수록 점차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K-POP만 봐도 힙합과 일렉트로닉, 락 장르 등이 다양하게 접목되어 있는데 이러한 트렌드는 이미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장르적 파괴를 통해 탄생되는 현재의 많은 음악들을 또 다른 장르로 재정의하기엔 이미 장르가 너무 많다. 물론 음악적인 성과와 산업을 위해서는 장르적 분류를 계속 해나갈 필요성은 있겠으나 대부분의 리스너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국 현대의 음악을 창작하거나 듣는 행위의 모티브는 ‘취향’인 것이다. essential;은 하나의 테마에 취향이 닮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고 있다.
| 이제 음악 사이트는 진부해
마침 오늘 세계 음원 스트리밍 업계의 공룡, 스포티파이가 한국에 상륙했다. 덕분에 국내 동종 서비스 업계들도 긴장하며 다양한 생존 전략을 짜고 있을 것이다. 벅스뮤직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essential;은 이러한 때 벅스에게 나름 든든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만약 벅스의 뮤직PD가 만든 플레이리스트들이 벅스뮤직 플랫폼 안에서만 유통되었다면 지금처럼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非벅스 회원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벅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적인 비주얼적 요소로 리스너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유튜브는 참 대단한 플랫폼이야)
그만큼 국내 음악 사이트는 더 이상 신선하거나 트렌디하지 않다. 즉 음원사이트는 음원들을 보관하고 있는 음원 라이브러리와 같은 곳으로 여겨지게 됐다. 음악 사이트에서 신박한 서비스가 시도되지 않는 이상, 다양한 주류 플랫폼들과 협업하거나 전략적으로 그곳에 올라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 essential; 홈 인테리어까지 넘볼까?
홈 인테리어 블로그들을 둘러보다가 거실 TV에 essential;을 켜두고 찍은 사진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essential;의 감각적인 이미지가 마치 팝아트 그림처럼 트렌디한 인테리어 효과를 주는 것. 그렇다면 벅스뮤직 essential;의 다음 행보는 한샘이나 오늘의 집 또는 삼성 비스포크, LG 오브제와 같은 홈 인테리어 취향을 중요시하는 브랜드들과 협업해보면 어떨까?
비대면 시대, 집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고 음악은 인테리어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essential;은 트렌디한 이미지로 ‘사실 난 음악 쫌 듣는 취향이란다~’라고까지 알려주는 일석이조의 인테리어 포인트가 되잖아. 마치 책꽂이에 킨포크 한두 권쯤 꽂아두는 것 처럼.
킴진 | KIMZINE